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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회복 사례

청소년 자해·극단 선택, 그들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by 노멀시티 2025. 5. 15.

이 시대의 청소년은 소리 내지 못한 고통을 몸에 새깁니다. 자해와 극단 선택은 단지 통계 수치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남기는 마지막 흔적입니다. 우리는 그 흔적을 경고음이 아니라

방황의 메아리로 들어야 합니다. 왜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고립되는 걸까요?

본 글은 그 복합적 원인을 개인, 사회, 환경 차원에서 깊이 있게 풀어보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안합니다.

청소년 자해·극단 선택, 그들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청소년 자해·극단 선택, 그들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2024년 상반기, 보건복지부는 10대 자해 관련 응급실 내원 환자가 8천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동기간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들이 보여준 자해 징후는 분명 존재했지만, 가정도 학교도,

때로는 사회 전체가 그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자해는 더 이상 이례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이제는 교실 속, 가정 안, 그리고 휴대전화 메시지 하나에도 그 전조가 담겨 있습니다.

침묵의 원인과 그 이면

1. 감정을 억누르며 자라는 아이들 – 개인의 고립

청소년기의 감정은 깊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은 사회적으로 억제되어 왔습니다.

"남자애가 왜 울어?" "예민하면 사회생활 못 해"라는 말들은 감정 표현을 약점으로 전락시켜 왔습니다.

감정이 억눌릴수록 아이는 자신 안에 벽을 세웁니다.

실제 한 중학생은 “감정을 말하면 부모님이 짜증부터 내요. 그래서 차라리 아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놨습니다.

몸에 새긴 상처는 언어보다 빠르고 분명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대응 방안:

  • 초중등 필수 정서 교육 도입
  • 감정표현 훈련(역할극, 글쓰기, 미술 등) 일상화
  • 교사 및 또래 간 공감 대화 훈련 프로그램 도입

2. 경쟁에 지친 사회, 아이는 수치로만 평가받는다 – 구조의 무관심

점수, 등수, 비교. 우리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잘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소외되고,

실패를 수치로 경험하게 됩니다. 사회는 그저 ‘노력 부족’이라며 외면하지만, 그 속에 깃든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가 말도 안 해요. 그냥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이 문장은 한 고등학생의 일기에서

발췌된 구절입니다. 존재가 점수로 환산되는 현실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삭제하고 싶어 합니다.

대응 방안:

  • 비인지적 평가 요소(정서, 협력, 회복탄력성 등) 반영
  • 중간·기말고사 외 대안적 평가 확대
  • 학교 정신건강 전담 인력 법정 배치 확대

3. 대화가 끊긴 가정 – 신뢰의 단절

가정은 정서적 안전지대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바쁜 일상, 피로한 어른들, 닫힌 문.

아이들은 조심스레 신호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건 무관심 혹은 조언이라는 이름의 통제입니다.

한 여중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힘들다 하면, 넌 다 가졌는데 왜 그러냐고 해요.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해요.

” 이 침묵이 반복되면, 아이는 결국 몸으로 말하게 됩니다.

대응 방안:

  • 부모 대상 감정공감 및 자녀 소통 교육 의무화
  • 학교와 연계한 가족 정서 치유 프로그램 확대
  • 지역사회 중심 가족 상담소 및 긴급 상담 창구 상시 운영

문제 요약 및 해결책 정리

요인 문제 핵심 대응 방안
개인 감정 표현 억압 정서교육, 감정훈련, 또래 공감 커뮤니케이션
사회 성과 중심 구조 평가 다변화, 정서 인프라 강화, 정신건강 인력 확대
가정 정서적 단절 부모 교육, 가정 상담, 지역 연계 지원 시스템

우리가 먼저, 조용히 손 내밀어야 할 시간

청소년의 자해와 극단 선택은 그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 구조적 침묵,

감정적 무지가 만든 복합적 결과입니다. 그들은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대신 침묵 속에 상처를 새겼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고통은 결국 몸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하게 해주는 사회, 기다려주는 부모, 감정을 존중해 주는 교실. 이 세 가지가 바뀌어야 아이들은

‘살아갈 이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경청이며, 훈계가 아니라 공감입니다.

“괜찮아, 네가 힘들다고 말해도 돼.”
이 한 문장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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